유통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하여 성장이 거의 정체된 상태이며 동종업체 간의 경쟁을 벗어나 채널 간의 경쟁이 격심해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유통강자들은 극심한 부진의 늪에 빠져 고군분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일한 채널 내에서의 경쟁이 아니고 채널 간 경계가 무너져 이종 채널 간의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이라고 하는 IT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새로운 유통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유통업에도 IT기술을 융합한 성장전략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온라인 시장은 이미 오래 전에 오프라인 시장을 추월하였고 단순히 외형 차원을 넘어 광고, 마케팅, 점포운영, 물류, 상품관리 등 경영 전반에 걸쳐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IT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기존의 유통기업만을 경쟁자로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보급은 막대한 오프라인 투자없이도, 기술 기반 브로커리지를 바탕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유통시장에서 지배적인 신규 세력 등장의 공통적인 특징은 기존 유통기업들이 충족시키지 못한 니즈(Unmet Needs)를 충족시키는 데 있다.

이미 무인점포가 등장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도 다양화되었으며 변화의 속도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고객의 니드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정교하게 되어 종전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기술로는 대응해 나가기가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빅데이터, CRM 같은 고객심리분석 툴이 등장하였으며,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고객의 세분화 관리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인 인구의 비중이 커지면서 실버시장이 형성되고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수의 20%를 넘어설 정도로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용량 상품이 트렌드화된 지 오래이다.

최근 유통업계는 성장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경쟁단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매출성장이 정체되고 수익성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추세의 반증이다.

필자는 유통에서 4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직장인으로서 평생을 유통업계에 종사한 셈이다. 백화점을 시작으로 대형마트, 슈퍼마켓, 편의점, 온라인 등 새로운 유통채널을 두루 직･간접으로 경험하면서 한국 유통시장의 발달 과정을 함께 해왔다. 특히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러시아 등 한국 유통의 해외시장 진출을 직접 진두 지휘하였으며 중국에서는 경영자로서 상주하여 직접 경영을 하기도 하였다.

업무적으로도 상품(MD), 마케팅, 출점, 점포운영,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경험을 쌓았으며 특별히 상품본부, 전략본부 등 전략업무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하였다. 돌이켜 보면 유통에서의 40여 년은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었던 같다. 한 번도 경영여건이 쉬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불확실성과의 싸움이었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경쟁이 심해지고, 고객은 더 까다로워지는 등 경영환경은 언제나 새로운 전략과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해 왔다. 모든 사업은 이러한 도전과 응전, 공격과 방어의 연속된 과정을 통하여 점점 더 진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필자가 평생 잊혀지지 않는 숫자가 있다. 그 숫자는 직장생활의 첫 근무지인 백화점의 첫해 연간 총매출액 487억 원이다. 그러나 이 매출액은 백화점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마트, 슈퍼, 편의점, 홈쇼핑, 온라인, 양판점, 쇼핑센터, 아울렛, 전문점 등 새로운 유통채널로 확장해 나감에 따라 35여 년이 지나가면서 30조 원이 넘는 대형 유통그룹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필자는 절실하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었다. 현장 경험을 가진 사람이 그 경험을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시아에서 유통이 가장 발달한 일본에 연수나 견학을 갈 때마다 현업 근무 경험자가 집필한 유통 관련 서적이 분야별로 다양한 점이 놀라웠다. 그 내용은 현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이며 생생한 참고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는 이런 유통 경력자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참고서가 거의 없었다. 그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유통 지침서를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쉽사리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한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여유가 없었다. 이제 현업에서 은퇴하면서 감히 시도를 하였고 1년 6개월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필자의 유통 38년의 자서전이며 한국 소매업의 발전과정의 지혜를 모은 책이다. 직접 어려운 상황에 대처했던 사례이며 그 과정에서 체득한 핵심 지혜를 모은 책이다. 상황에 따른 사례연구 중심으로 유통의 다양한 분야의 핵심전략을 정리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유통환경이 바뀌어도 경영의 기본 철학이나 기본 논거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2000년 전에 쓰인 성경이 오늘날까지 베스트 셀러이듯이 유통사업도 골간을 이루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며 이러한 기본은 항상 진리라고 생각한다.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항상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고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은 과거의 사례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재의 유통흐름과 IT 기술기반으로 일어나는 미래의 유통의 변화와 나아가야 할 방향도 함께 제시한다. 이 책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길을 안내해 주는 길잡이자 참고서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얼마 전 한글의 모태인 훈민정음을 다룬 글을 본 적이 있다. 훈민정음 창제의 근본정신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에서 나왔다고 한다. 백성들이 쉽게 자기의 뜻을 펼쳐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유통이론을 공부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현장 경험에서 체득한 경험의 지혜를 전수하고 나누기 위한 목적의 책이다. 유통을 쉽게 이해하고자 하는 초보자들과 경영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 수립이 반복되는 현장 근무자들에게 유용한 지침서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1차적으로 핵심전략을 모아 압축 정리하였으며 더 많은 내용을 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완성도나 미흡한 부분은 다음을 기약하며 많은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린다.

이 책의 내용은 단품 종류가 많아 단품 관리가 중요하고 유통업체가 재고부담을 지는 직매입 조건으로 매입을 하여 재고관리가 중시되는 할인점이나 슈퍼마켓, 전문점 등 직매입 형태의 점포를 운영하는 소매업에 적합한 내용이 주류이다.

또한 유통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전략(Key success Factor) 위주로 압축, 편성하였으며, 인용된 통계자료는 논거를 설명하기 위한 일정 시점의 단순한 예시자료이며 현재에는 시사성이 없는 자료이다. 혹시라도 관련업체의 명예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자료는 공개된 자료 이외에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관련 없는 이니셜로 처리하였다.

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유통 38년 경험을 만들어 주신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유진그룹에 감사드립니다. 추천사로 격려해준 롯데그룹 유통부문 이원준 부회장님,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김상훈 교수님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